해마다 막히는 길, 해마다 돌아가는 사람

한국도로협회 교육홍보실
written by kroadedu · 2026. 10. 7

명절이 다가오면 도로는 한쪽으로 기운다. 아래로 내려가는 차선만 붉게 물들고, 반대편은 헐겁다. 며칠 뒤에는 정반대가 된다. 이 단순한 그림이 60년 넘게 되풀이됐다. 해마다 같은 뉴스가 나오고, 해마다 같은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그 한숨의 자리를 조금 옮겨 보면 다른 것이 보인다. 길이 막힌다는 것은 그 길로 가려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열차 지붕까지 사람이 올랐던 시절

1960년대의 귀성은 도로가 아니라 철길의 일이었다. 서울역에는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며칠씩 줄을 섰고, 객차에 오르지 못한 이들이 지붕까지 올라가던 시절의 사진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때 국토를 잇는 도로는 대부분 비포장이었다. 시외버스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달렸고, 비가 오면 길 자체가 사라지기도 했다. 고향에 가는 일은 마음보다 몸이 먼저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귀성객으로 붐비는 서울역 ⓒ국가기록원
귀성객으로 붐비는 서울역 ⓒ국가기록원
귀성열차 내부 ⓒ국가기록원
귀성열차 내부 ⓒ국가기록원

그 시절 명절의 이동은 ‘얼마나 걸리느냐’가 아니라 ‘갈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도로는 아직 사람을 실어 나를 만큼 자라지 않았고, 사람들은 길이 자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속도로가 명절의 지도를 바꾸다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가 전 구간 개통하면서 그림이 달라졌다. 서울과 부산이 하루 안에 오갈 수 있는 거리가 됐고, 뒤이어 호남·영동·중부의 축이 차례로 열렸다. 자가용이 보급되자 귀성은 ‘표를 구하는 일’에서 ‘길을 나서는 일’로 바뀌었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 새벽에 출발하는 풍경, 차 안에서 도시락을 나눠 먹는 풍경이 그때 생겼다.

정체도 함께 생겼다. 길이 넓어진 만큼 그 길로 나서는 사람도 늘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신문은 명절 연휴의 이동을 ‘민족 대이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라디오는 정시마다 구간별 소요시간을 읽어 주었고, 운전자들은 그 목소리에 기대어 휴게소에 들를지 말지를 정했다. 도로는 그해 명절에 대한민국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재는 자이기도 했다.

정체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

명절 도로는 저절로 흐르지 않는다. 해마다 정부와 도로 관계기관은 특별교통대책을 세운다. 갓길을 임시로 열고, 나들목 진출입을 조절하고, 임시 화장실과 순찰을 늘린다. 2017년부터는 명절 연휴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교통정보센터 ⓒ한국도로공사
한국도로공사 교통정보센터 ⓒ한국도로공사

이 모든 조치의 뒤에는 명절에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통정보센터의 야간 근무자, 순찰차와 견인차, 사고 처리를 대기하는 유지관리 인력이 그렇다. 차례를 지내고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례를 미루고 나온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귀성길은 누군가의 근무일 위에 놓여 있다.

이제 귀성길은 실시간 교통정보와 함께 간다. 어느 구간이 몇 분 막히는지 출발 전에 알 수 있고, 우회로도 자동으로 뜬다. 그런데도 정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질 수 없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가려는 마음이 여전히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교통상황실 ⓒ공공누리
교통상황실 ⓒ공공누리

출처

국가기록원 https://www.archives.go.kr
한국도로공사 https://www.ex.co.kr/
공공누리 – https://www.kogl.or.kr/index.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