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을 가르던 길, 중동의 뜨거운 기억

한국도로협회 김동천 과장
written by kroadedu · 2026. 7. 16
1978년 현대건설의 중동 현장을 방문한 정주영 회장(가운데)이 노동자와 함께 노래하고 있다.ⓒ아산정주영닷컴 제공
1978년 현대건설의 중동 현장을 방문한 정주영 회장(가운데)이 노동자와 함께 노래하고 있다.ⓒ아산정주영닷컴 제공

우리에게 ‘길’은 늘 집으로 돌아가는 익숙한 귀갓길이었지만, 50년 전 중동으로 떠난 이들에게 길은 고향과 자신을 분리하는 거대한 장벽이자, 동시에 그 장벽을 허물고 다시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생존의 현장이었다. 맨바닥에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며 닦아 올린 사막의 고속도로는 당시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해 던진 강렬한 메시지였다. 기록 속의 숫자로만 남은 ‘중동건설’이라는 단어 뒤편에 숨겨진, 이름 모를 기술자들의 거친 손마디와 그들이 사막의 도로 위에서 써 내려갔던 치열한 삶의 궤적을 되짚어 본다.

척박한 사막,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다

1970년대 중반, 세계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휘청였다. 검은 황금이라 불리는 석유 값이 폭등하자 대한민국 경제는 존립을 걱정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 그 위기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중동이라는 미지의 땅을 택했다. 그것은 단순히 공사를 수주하는 일을 넘어, 국가의 명운을 걸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결단이었다. 삼환기업의 사우디아라비아 고속도로 건설을 시작으로, 현대건설의 주베일 산업항까지. 우리 노동자들은 낯선 이국 땅에서 길을 내며 대한민국 근대화의 엔진을 돌릴 ‘오일 달러’를 끌어왔다.

도로에 아로새겨진 그리움과 고독의 무게

당시 중동의 도로 현장은 육체적 고통보다 깊은 외로움이 지배하던 곳이었다. 낮에는 타는 듯한 태양 아래 아스팔트를 다지고, 밤에는 텐트 속에서 가족의 사진을 보며 하루를 버텼다. 그들에게 도로는 단순히 목적지로 향하는 통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의 얼굴, 늙으신 부모님의 주름진 손을 다시 잡기 위해 건너야 했던 절박한 징검다리였다. 낯선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도 그들이 끝까지 붓을 놓지 않고 길을 닦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길 끝에 비로소 열릴 우리 가족의 평온한 미래를 믿었기 때문이다.

멈추지 않는 길, 내일을 향한 연결

사막을 가로질러 뻗은 아스팔트는 이제 시간이 흘러 낡았을지 모르지만, 그 속에 담긴 정신은 여전히 단단하다. 우리가 오늘 누리는 편리한 인프라와 경제적 성취는 모두 그 거친 길 위에서 헌신했던 이들의 청춘을 자양분 삼아 자라났다. 도로는 사람을 잇는 매개라 하지만, 중동건설의 역사는 길이라는 매개가 어떻게 한 시대의 운명을 바꾸고,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그들이 남긴 것은 단순한 도로망이 아니라,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저력 그 자체다.

마무리하며

길은 과거의 기억을 품고 미래로 향한다. 중동의 모래는 세월에 씻겨 내려갔어도, 우리가 닦아놓은 그 길은 여전히 선명하게 이어져 있다. 도로는 사람이 만드는 법이고, 그 도로가 향하는 곳은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이다. 먼 타국에서 고국을 그리며 길을 냈던 그들의 뒷모습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이 길을 더 소중하게 달려야 하는 이유이다.

– 참고자료 : 국가기록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