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지하를 잇는 초장대 K-지하고속도로,안전과 효율을 설계하다
1. 도로는 왜 지하로 내려가는가
도로는 오랫동안 ‘땅 위에 그어진 선’이었다. 산을 깎고 강을 건너며 도시와 도시를 이어 온 길은 곧 문명의 동맥이었다. 그러나 도시가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지상에서 새로운 길을 그릴 여백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수도권과 대도시의 간선도로는 만성적인 정체에 시달리고, 지상 공간을 추가로 확보하는 일은 막대한 토지보상비와 환경·소음 민원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그 해답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지하’다. 도시의 지하 깊은 곳을 관통하는 대심도 지하고속도로는 지상 공간을 보전하면서도 상습 정체를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제5차 국토종합계획(2020~2040)과 제2차 고속도로 건설계획(2021~2025), 그리고 ‘수도권 30분 출퇴근 시대’라는 국정과제를 통해 경부·경인 등 주요 간선축의 지하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서울의 신월여의지하도로, 서부간선지하도로 및 만덕~센텀 지하도로가 이미 개통해 운영 중이고, 수도권1순환(구리~성남) 약 35km, 민자사업 사상~해운대(22.8km), 양재~고양(33.5km) 등 최근 추진 중인 지하고속도로는 모두 초장대 규모로 계획되고 있다. 특히 ‘양재~고양’ 민간투자사업은 민자적격성조사를 통과했고, ‘용인~서울’ 노선도 예비타당성조사가 진행 중이다. 두 노선이 연결되면 운전자는 지하만으로 50km가 넘는 거리를 달리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길고 깊은 도로가 우리에게 처음이라는 점이다.
“도로가 지하로 내려가는 순간, 우리가 알던 도로의 상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2. ‘초장대·대단면·대심도’라는 미답의 영역
지하고속도로는 단순히 터널을 길게 뚫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마주한 과제는 ‘초장대(연장 20km 이상)·대단면(편도 4~5차로 규모의 분합류부)·대심도(지하 40m 이상)’라는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겹쳐지는,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영역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연장 18km 이상의 도로터널은 단 7개에 불과하다. 노르웨이의 레르달 터널(24.5km), 중국 종남산 터널(18.0km), 일본 야마테 터널(26.6km), 호주 웨스트커넥스(19.0km) 등이 운영 중이고, 노르웨이 로그파스트(27.0km)와 중국 톈산성리(22.1km), 스웨덴 E4 바이패스(18.0km)가 건설 중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도심지를 고속으로 관통하면서 지하에서 분기·합류까지 처리하는, 우리가 추진하는 K-지하고속도로와 유사한 사업은 호주와 스웨덴 단 두 곳뿐이다. 그나마 일본 야마테 터널은 운영 속도가 60km/h에 그쳐 고속주행 조건에는 미치지 못한다. 국내 최장 도로터널인 인제양양터널도 약 11km 수준에 머문다.
해외 선도 사례를 들여다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운영 중인 웨스트커넥스와 시공 중인 E4 바이패스는 블루투스 기반 내비게이션 측위, 인간공학적 내부 조명·디자인 정도를 적용하고 있을 뿐, 초장대·대심도 환경에 특화된 안전·효율 기술은 아직 충분히 정립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해, K-지하고속도로가 요구하는 기술의 상당 부분은 ‘벤치마킹’할 대상조차 없는, 우리가 직접 길을 내야 하는 분야인 셈이다.

미국 보스턴의 빅 디그(Big Dig)가 지하도로 전용 교통관리센터(Operations Control Center)를 구축해 운영성과 안전성을 상시 확보하려 노력한 것이 그나마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다. MIT와 함께 지하 교통류와 지상부를 연계 모니터링하고, 다양한 교통관리 전략을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한다.

여기에 모빌리티의 변화가 또 하나의 변수를 더한다. 2030년 이후 개통이 예상되는 지하고속도로는 전기차·수소차 등 친환경차의 이용 비율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제4차 친환경자동차 기본계획은 2030년 신차 판매의 80% 이상을 친환경차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폐쇄된 지하공간에서 친환경차의 화재·폭발에 대응하는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도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다. 내연기관 차량을 전제로 설계된 기존의 터널 환기·방재 기술만으로는 다가올 시대를 감당하기 어렵다.
3. 그래서, 국가 R&D가 시작됐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출범한 것이 국토교통부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이 지원하는 국가 연구개발과제 ‘초장대 K-지하고속도로 인프라 안전 및 효율 향상 기술 개발’(RS-2024-00416524)이다. 2024년 4월에 착수해 2028년 12월까지 4년 9개월에 걸쳐 진행되며, 총 약 270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과제다.
연구단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을 주관기관으로, 한국도로공사·한국교통연구원·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한국자동차연구원·한국광기술원을 비롯해 서울시립대학교·한서대학교 등 학계, 그리고 (주)내일이엔시를 포함한 다수의 전문 기업이 참여하는 산·학·연·관 협력 체계로 꾸려졌다. 설계와 시공부터 방재·안전관리·교통처리·이용자 편의, 나아가 실증과 제도·정책까지 지하고속도로의 전 생애주기를 아우르는 통합 연구단이다. 필자가 몸담은 (주)내일이엔시 도로교통안전연구소 역시 도로·교통안전 분야의 한 축으로 이 여정에 함께하고 있다.

연구단이 정의하는 K-지하고속도로는 ‘국내 지하 환경에서 이용자의 안전과 편의를 높이고 모빌리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초광역을 연결하는 초대단면 지하고속도로’다. 그리고 이 목표를 향해 연구단은 도전적인 정량 목표를 내걸었다. 위험차량 사전검지 정확도 95% 이상, 200년 빈도 강우로 인한 침수 발생 시 이용자 대피시간 20분 이상 확보, 대단면 수직구의 수직도 5mm/m 이하, 환기용 수직구 설치간격 10km 이상(소형차 전용), 그리고 시속 100km 고속주행 조건에서 측위 정밀도 1m 이하. 하나하나가 국내외에서 아직 달성된 적 없는 수준의 기술 목표다.
“K-지하고속도로 유사 인프라는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드물다.
그만큼 우리가 선도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4. 다섯 갈래로 뻗은 연구, 무엇을 개발하고 있나
연구단은 지하고속도로가 마주할 위험과 과제를 다섯 갈래의 구성기술로 나누어 풀어가고 있다. 핵심은 하나로 모인다. ‘사고가 난 뒤 수습하는 도로’에서 ‘사고를 미리 막는 도로’로의 전환이다.
구성기술 A — 재난·사고에 ‘대응’하는 기술
이는 이미 발생한 위험에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기술이다. 연구단은 특히 전 세계적으로도 기술이 미비한 친환경차 화재 대응에 주력하고 있다. 전기차·수소차의 화재 위험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위험도 평가(QRA) 기법을 새로 정립하고, 소방대원이 도착하기 전에 화재를 조기 진압하거나 확산을 지연시키는 설비 기술을 개발한다. 또한 차량 폭발로 덕트(풍도)슬래브가 붕괴해 2차 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폭형 덕트슬래브 설계기준을 마련하고, 사고 발생 시 운전자가 직관적으로 인지하고 대피할 수 있는 인지효율 향상 교통차단시설과 교통관리 기술을 함께 개발하고 있다.

구성기술 B — 재난·사고를 ‘예방’하는 기술
연구단은 위험을 사후에 수습하는 대신 진입 단계에서부터 걸러내는 데 초점을 둔다. 다중 센서로 차량의 온도를 검사해 화재 위험차량과 과적차량을 사전에 감지하고, 필요하면 진입을 제한하며 진입한 차량을 끝까지 추적·모니터링하는 ICT 기반 위험차량 통합관리 시스템이 핵심이다. 여기에 위험차량을 신속히 지상으로 배출하기 위한 대단면 다목적 수직구의 설계·시공 기술, 그리고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호우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감전사고를 예방하는 분산형 집·배수 기술이 더해진다. 특히 대단면 수직구는 현장타설 대비 공기를 20% 이상 단축하면서 수직편차 5mm/m를 확보하는 프리캐스트 구조로 개발 중이다.

구성기술 C — 인프라를 ‘최적화’하고 환경을 ‘개선’하는 기술
지하고속도로의 효율과 쾌적성을 끌어올리는 기술이다. 도심에서 환기용 수직구는 대표적인 기피시설이다. 연구단은 풍도 내 부스터 팬의 정압 도달거리를 극대화해 수직구 설치간격을 10km 이상으로 넓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수직구 개소수가 줄면 민원이 줄고 공사비도 절감된다. 다만 간격이 넓어지면 굴착 공기가 늘어나는 만큼, 이를 상쇄할 실시간 스마트 고속굴착 시스템을 함께 개발한다. 또한 내부·외부 공기 중 유해물질을 저감·관리하는 모니터링 기술,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포함한 부대시설과 초대단면 구간의 안전·최적화 굴착 기술도 이 갈래에 속한다.

구성기술 D — ‘이용자 편의’와 교통 운영 효율을 높이는 기술
운전자가 20km가 넘는 지하공간을 장시간 달릴 때 느끼는 폐쇄감과 불안감은 그 자체로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다. 연구단은 조명·색상·패턴 등 디자인 요소를 분석해 심리적 안정감과 시각적 인지력을 높이는 인간공학적 내부 공간 설계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주행 시뮬레이터로 검증한다. 또한 다수의 분기·합류부가 존재하는 지하고속도로의 주행 특성을 반영한 종합 교통안전시스템, 그리고 위성항법(GNSS) 음영지역에서도 시속 100km 고속주행 중 오차 1m 이내의 위치정보를 제공하는 정밀 실내 측위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지상과 동등한 수준의 길 안내를 지하에서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구성기술 E — ‘실증’과 ‘제도’로 현장에 잇는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현장에 적용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연구단은 개발 기술을 실제 현장에 반영하기 위한 연구실증단을 운영하고, K-지하고속도로의 계획-설계-운영 전 과정을 뒷받침할 법·제도 정비방안과 로드맵을 함께 마련하고 있다. 기술과 제도를 동시에 준비함으로써, 연구 성과가 ‘연구실의 결과’에 머물지 않고 ‘현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다.
“사고가 난 뒤 수습하는 도로에서, 사고를 미리 막는 도로로,
그것이 여러 갈래의 연구가 향하는 하나의 방향이다.”
5. 지하고속도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도시의 문제다
순천-완주고속도로 사매2터널 사고(2020년)는 3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999년 몽블랑 터널 화재는 39명의 희생과 약 2,400억 원의 피해를 남겼다. 폐쇄된 지하공간에서의 재난은 곧바로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지하고속도로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은 단순한 토목·교통 기술의 진보를 넘어, 도시에 사는 우리 모두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도로는 더 이상 땅 위에만 있지 않다. 도시의 지하 깊은 곳에서, 데이터와 센서와 인공지능이 함께 흐르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초장대 K-지하고속도로는 부족한 지상 공간을 되돌려주고, 도심의 정체를 풀어내며, 무엇보다 그 길을 달리는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선배 도로인들이 산을 뚫고 강을 건너 대한민국의 길을 열어왔듯, 이제 우리는 지하라는 미답의 영역에 안전하고 효율적인 길을 새로 그리고 있다. 그 길의 끝에서, 도시는 다시 한 번 숨 쉴 여백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