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방호 다 모여라! – ③‘황금전설’ 수호성인이 보우하사

지정용 작가
written by kroadedu · 2026. 10. 7

마차 제작에는 뉴턴, 넬슨, 셰익스피어, 다윈, 제너, 나이팅게일 등 영국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유품을 활용했다

2023년 5월 6일 영국 국왕 찰스 3세 부부의 대관식. 버킹엄 궁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까지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로 이동했다. 3톤의 무게를 윈저그레이 6마리가 끌었다. 부드러운 유압식 서스펜션 위에 알루미늄 차체를 입혔다. 냉난방장치에 전동식 윈도우까지, 왕실에 따르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승차감이 좋다”.

2014년 6월 4일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 의회 개원식 연설을 하러 가면서 처음 공식 사용했다. ‘메이드 인 호주’다. 2012년 엘리자베스 2세의 다이아몬드 주빌리, 즉위 60주년에 맞췄다. 실버 주빌리는 25주년, 골든 주빌리는 50주년이다. 70주년은 플래티넘 주빌리다.

대관식에서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를 타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하는 찰스 3세 부부 /Creative Commons
대관식에서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를 타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하는 찰스 3세 부부 /Creative Commons

코치빌더 호주의 짐 프레클링턴이 마차 장인 50명을 동원해 만들었다. 하지만 13만8천 파운드의 제작비를 해결하지 못했다. 영국과 왕실의 예산 지원을 받았던 게 아니었다. 비용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프레클링턴이 일단 제작에 들어갔던 것이다. 민간 기부금 등으로 비용을 해결하느라 60주년 2년이 지난 2014년 뒤늦게 왕실에 인도했다.

프레클링턴은 마차를 제작하면서 영국의 역사와 유산을 담아낼 수 있는 재료를 최대한 쓰려고 했다. 물리학자 뉴턴의 사과나무에서 채취한 목재, 메이플라워호의 나무 조각 등을 사용했다. 넬슨 제독의 기함 ‘HMS 빅토리’의 나무로 지붕의 왕관을 조각해 금박을 입혔다.

대문호(大文豪) 셰익스피어와 ‘종의 기원’ 찰스 다윈, ‘종두법’ 에드워드 제너 등의 유품도 활용했다.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드레스 조각도 들어가 있다. 대헌장 ‘마그나카르타’의 디지털 사본을 내부에 두었다.

내부 벽면과 천장에는 런던 타워, 세인트 폴 대성당, 솔즈베리 대성당,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을 상감(象嵌)했다. 무게 2.75톤, 전장 5.5m, 높이 3.4m다.

2011년 4월 29일 윌리엄 왕자와 캐서린 미들턴은 결혼식 당시 ‘Australian State Coach’에 탔다. 프레클링턴이 1988년 5월에 제작했다. 현대식 서스펜션과 전동식 장치를 적용했다. 당시 호주를 방문한 여왕에게 전하는 호주 국민들의 선물이었다.

프레클링턴이 제작한 ‘Australian State Coach’ /Creative Commons
프레클링턴이 제작한 ‘Australian State Coach’ /Creative Commons

찰스 3세 부부는 대관식이 끝나고 버킹엄 궁 귀갓길엔 관례대로 황금마차를 이용했다. 왕실 차고, 로얄 뮤즈(Royal Mews)에서 두 번째로 비싸다. 1762년 만들어져 1831년 윌리엄 4세 이후 모든 대관식에서 쓰이고 있다. 8마리의 윈저그레이가 끈다. 제작 이후 바퀴에 고무를 덧댄 것 외에는 바뀐 게 없다.

1953년 엘리자베스 2세도 대관식 때 ‘황금마차’를 탔다 /Creative Commons
1953년 엘리자베스 2세도 대관식 때 ‘황금마차’를 탔다 /Creative Commons

무겁고 승차감이 엉망이다. 바퀴의 진동이 고스란히 객실로 전해진다. 그럴 수밖에. 서스펜션 개념이 없었던 1762년형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아름답지만 (승차감은) 매우 끔찍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대관식을 포함해 실버·골든 주빌리, 딱 세 번만 탔다. 가치는 350만 파운드다.

2009년 근위대 분열식에서 엘리자베스 2세는 한 쌍의 클리블랜드베이가 끄는 마차를 탔다 /Creative Commons
2009년 근위대 분열식에서 엘리자베스 2세는 한 쌍의 클리블랜드베이가 끄는 마차를 탔다 /Creative Commons

로얄 뮤즈는 마차들을 위해 두 종류의 말들을 관리한다. 윈저그레이와 클리블랜드베이 30필이다. 윈저그레이는 예전부터 왕실의 마차를 끌었던 회색 말이다. 클리블랜드베이는 클리블랜드 지방에서 개량한 근육질의 베이지색 품종이다.

가장 비싼 차는 벤틀리다. 한 대당 170억 원인데, 두 대가 있다. 여왕 즉위 50주년, 2002년 골든 주빌리에 맞춰 벤틀리가 희사했다. 생화학 테러 대비 장치 등 최고 등급의 방탄을 자랑한다. 나머지 세 대는 롤스로이스다. 1950년형 팬텀 Ⅳ, 1978년형 팬텀 Ⅵ, 1986년형 팬텀 Ⅵ다.

로얄 뮤즈의 1986년형 롤스로이스 팬텀 VI /Creative Commons
로얄 뮤즈의 1986년형 롤스로이스 팬텀 VI /Creative Commons

왕실은 퍼레이드에 쓸 두 대도 갖고 있다. ‘Royal Review Vehicle’이라고 부르는데, 오픈형 레인지로버다. 이들 의전차는 번호판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재규어 2대와 다임러 3대, 여기에 일반형 레인지로버 3대도 로얄 뮤즈의 식구다. 조금은 덜 공식적인 행사(Semi State Car)에 활용한다. 이들은 번호판이 있다.

2012년식 재규어 XJ 리무진 /Creative Commons
2012년식 재규어 XJ 리무진 /Creative Commons
1992년식 다임러 DS420 리무진 /Creative Commons
1992년식 다임러 DS420 리무진 /Creative Commons

2012년부터는 BMW i3, BMW 7시리즈 하이브리드와 르노 트위지 등 전기차를 구입했다. 로얄 뮤즈의 차량은 아주 짙은 와인색으로 도장하는데, 이 색의 명칭은 로얄 클라레(Royal Claret)다.

로얄 뮤즈 차량의 후드에는 독특한 장식물이 있다. 용을 참수하는 성 조지(Saint George and The Dragon)다.

‘성 조지(Saint George)’ 목판화 /Wikipedia
‘성 조지(Saint George)’ 목판화 /Wikipedia

13세기 후반 이탈리아 제노바의 대주교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가 황금성인전을 편집했다. 여기에 3세기에 활동했던 그리스계 로마 군인 ‘조지(게오르그)’의 이야기가 나온다.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실레네 지역에 용 한 마리가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다가 끝내 사람 제물까지 요구했다. 이때 이곳을 지나던 조지가 용을 물리치고 리비아 지역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이 공로로 조지는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성 조지는 잉글랜드, 에티오피아, 조지아, 모스크바 등의 수호성인이다.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성 조지 깃발은 영국을 상징하는 깃발로 지금도 쓰인다.

엘리자베스 2세는 생전에 장례 계획, 작전명 런던 브릿지(London Bridge)를 승인했다. 로얄 뮤즈는 이에 따라 영구차(State Hearse)를 준비했다.

발모럴 성에서 왕립 공군기지에 도착한 엘리자베스 2세의 시신을 운구하는 재규어 /Creative Commons
발모럴 성에서 왕립 공군기지에 도착한 엘리자베스 2세의 시신을 운구하는 재규어 /Creative Commons

재규어 XJ를 기반으로, 유리 지붕을 높여 추모객들이 관을 더 잘 볼 수 있게 했다. 후드의 성 조지에는 은도금을 했다.

여왕이 죽음을 맞았을 때 내각에 알리는 전문은 ‘London Bridge is Down’이었다

여왕은 스코틀랜드의 왕실 별장 발모럴 성에서 생을 마감했다. 말년에 골수암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졌지만, 사망진단서엔 노환으로 기록했다. 영연방 국가들은 2022년 9월 19일 국장일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선포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 에든버러 공작은 2021년 9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80세를 넘어서면서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했다. 평소 “죽으면 랜드로버 뒷좌석에 태워 윈저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또 지붕 없는 녹색 도장을 요청했다. 필립 공은 자신의 관 고정장치까지 신경을 썼다. 엘리자베스 2세가 임종을 지켰다.

여왕의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 에든버러 공작도 자신의 영구차를 미리 준비했다 /Creative Commons
여왕의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 에든버러 공작도 자신의 영구차를 미리 준비했다 /Creative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