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독립운동의 성지를 걷다

‘나라사랑 역사의 길’은 독립기념관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진행한 국내 독립운동 및 국가수호 사적지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기획된 기록물이다. 이 길은 독립운동과 국가수호 사적지를 중심으로 현충시설, 전근대 역사유적, 경관 등을 탐방할 수 있는 역사의 길로, 우리나라 989개의 독립운동시설과 1,322개의 국가수호시설 등 총 2,311개의 현충시설을 중심으로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탐방 코스를 제공한다.
도로교통 저널에서는 독립운동과 6·25전쟁의 국가수호 사적지를 알리고, ‘나라사랑 역사의 길’을 탐방할 수 있도록 기획 연재를 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서울이 아닌 안동에서 일제강점기 한국독립운동을 주도하였던 안동지역 독립운동가들의 자취를 돌아보고 이들의 나라사랑의 정신을 되새긴다.
탐방로 안내
안동으로 가는 길은 대개 하회마을이나 도산서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같은 길 위에 다른 이름이 있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만주로 떠난 내앞마을 사람들, 「광야」를 쓴 이육사. 안동은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고장으로 꼽힌다. 이번 여정은 그 이름들이 실제로 살았던 자리를 도로를 따라 이어 본다.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코스 개요
한국독립운동은 1894년 안동 갑오의병에서 시작해 1945년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까지 51년간 이어졌다. 의병항쟁·계몽운동·3·1운동·유림단의거·청년운동·농민운동·6·10만세운동·사회주의운동까지, 안동은 독립운동의 거의 모든 방법론을 거쳤고 전국 최다 독립유공자를 배출해 ‘한국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린다. 그 바탕에는 퇴계학통을 이은 남인 양반 사회가 있었다. 주리론적 대의명분론이 항일 사상의 뿌리가 됐고, 통혼과 동성 결집으로 다져진 명문가의 결속력, 상대적으로 두터운 중소지주층이 지방관을 견제하고 운동을 지속시키는 사회적 기반이 됐다. 이 코스는 이상룡·김동삼·이육사 등 독립운동가의 거처를 걸으며 확인한다.
➊ 임청각 (안동시 임청각길)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이 태어난 집이다. 조선 중기에 지어진 고택으로 국가지정 보물이다. 석주는 1911년 만주로 망명하며 이 집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 이 집안에서 독립유공자 11명이 나왔다.

일제는 이 집을 그냥 두지 않았다. 1940년대 중앙선 철도를 놓으면서 임청각의 마당을 가로질러 선로를 깔았다. 행랑채와 부속 건물이 헐렸다. 철로는 2021년 걷어냈고, 문화재청과 경상북도, 안동시가 280억 원을 들여 복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2026년 8월 역사문화공유관이 임시 운영을 시작했다.

➋ 법흥사지 칠층전탑 (임청각 바로 옆)
임청각 담장 너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이 서 있다. 국보다. 통일신라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본다. 탑과 고택과 철길 자리가 한 시야에 들어온다.

이 자리는 독립운동 유적이 아니다. 그러나 천 년을 버틴 탑 옆으로 식민지 철도가 지나갔다는 사실 자체가 그 시대를 말해 준다. 지금은 탑도 고택도 남았고 철길만 없다.
➌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안동시 임하면 내앞마을)
2007년 8월 안동독립운동기념관으로 문을 열었고, 2014년 1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으로 확대됐다. 경북 북부 유교문화권의 독립운동을 조사·연구·전시하는 곳이다. 시민 5,500여 명의 서명운동이 설립의 출발이었다.
제3전시실은 안동의 독립운동가 1,000인을 추모하는 영상 공간이다. 이름 하나하나가 벽을 채운다. 한 고장에서 이 정도 규모의 명단이 나왔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이 코스의 중심이다.
➍ 내앞마을과 백하구려 (기념관 인근)
의성 김씨가 600년을 살아온 마을이다. 1911년 정월, 이 마을 사람들이 집단으로 만주 망명길에 올랐다. 백하 김대락은 예순여섯의 나이에, 만삭인 손부와 함께 압록강을 건넜다. 그의 집 백하구려는 협동학교가 잠시 쓰기도 했다.
일송 김동삼도 이 마을 사람이다. 서로군정서를 이끌었고 만주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에 힘썼다. 한 마을에서 독립유공자가 수십 명 나왔다. 마을은 지금도 사람이 산다. 관람 시 사생활에 유의한다.
➎ 이육사문학관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육사(1904~1944)가 태어난 마을에 2004년 세워졌다. 「청포도」와 「광야」의 원고, 옥중 사진, 수인번호 264의 내력을 볼 수 있다. 그는 열일곱 차례 투옥됐고 1944년 베이징의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했다.

기념관 앞으로 낙동강 상류가 흐른다. 도산서원과 가깝다. 시를 남긴 사람과 총을 든 사람이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이 코스에서 가장 조용하게 보여주는 자리다.
➏ 안동 3·1운동 기념 공간 (안동시 웅부공원 일대)
1919년 3월, 안동 읍내에서도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장날 장터에 모인 군중이 시위를 벌였고 사상자가 났다. 지금 그 자리는 시내 한복판이다.
탐방을 마치며
임청각 마당의 철길이 사라지는 데 100년 가까이 걸렸다. 걷어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걷어내야 한다고 합의하는 데 그만큼이 필요했다. 우리가 매일 지나는 도로 아래에도 아직 확인되지 않은 자리들이 있을 것이다. 길을 놓는 일은 결국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울지 정하는 일이다.
출처: 국내 독립운동국가수호 사적지(http://sajeok.i815.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