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글로벌 건설산업정책의 벤치마킹 대상을 찾아서

유창E&C 이상호 부회장
written by kroadedu · 2026. 10. 7

글 · 이상호 유창E&C 부회장

지난 수십년간 우리는 글로벌 벤치마킹 대상으로 미국과 유럽 건설산업을 생각해 왔다. 미국과 유럽의 건설정책이나 제도가 그 나라 건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시킨 것으로 생각했고, 그런 정책이나 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하고자 했다. 건설사업관리제도(CM), 적격심사제도, 감리제도 등 한국의 건설 관련 법령에 등장하는 수많은 건설제도가 그와 같은 선진국 벤치마킹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의식적인 선진국 벤치마킹 노력의 성과가 의도했던 만큼 있었던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우리가 건설선진국이라 생각해 왔던 미국과 영국의 실상은 벤치마킹 대상이라기 보다 반면교사에 가까운 느낌을 주고 있다.

지금 미국은 한국에 단순 투자만 요청하지 않는다. 반도체 공장이건 자동차 배터리 공장이건 한국업체들이 직접 미국에 와서 건설해 주기를 바란다. 영국은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건설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고 한탄하고 있다. 한동안 유럽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했던 독일의 건설산업도 신통치 않다. 오랫동안 한국의 벤치마킹이 되었던 미국과 유럽 선진국의 건설산업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원인을 제대로 알고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한국 건설산업의 쇠퇴를 막고, 발전을 도모하는 길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새로운 글로벌 건설산업정책은 없을까?

미국과 유럽 건설산업은 왜 쇠퇴했나

먼저, 미국과 유럽 선진국의 건설산업이 쇠퇴하게 된 핵심적인 공통요인부터 간략하게 살펴 보자. 첫째는 인구구조의 변화와 심각한 숙련공 부족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더불어 숙련기능공과 기술인력들이 대거 현장을 떠난 반면, 청년층 유입은 저조하여 신규 인력 공급이 매우 부족했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 각국마다 몇년전부터 강력한 이민자 규제를 시행하면서 제3국으로부터의 신규 노동력 공급이 줄어 들었고, 그 결과 인건비 상승과 공기 지연이 일상화되었다. 특히 영국은 이른바 브렉시트(Brexit) 이후 동유럽 출신의 숙련 기능공(목수, 벽돌공, 용접공, 용접기사 등)들이 대거 유출되면서 신규 외국인 충원이 사실상 차단되었고, 이에 따라 현장 인건비 상승과 공기 지연 및 품질 저하 문제가 심각해졌다. 독일도 비슷한 처지다. 한국에서도 부족한 건설인력을 보충하는 방법으로 이민을 확대하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미국과 유럽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각종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면서 국민적 반대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 성공할 것 같지 않다.

둘째는 과도한 토지 및 건축 규제와 인허가 지연이다. 토지 사용 제한, 고도 제한, 인허가 절차의 복잡화로 인해 특히 대규모 프로젝트일수록 승인 가능성이 낮아졌다. 미국은 주/지자체별로 건축 법규와 현장 규제가 제각각이다 보니 시공 프로세스를 표준화하기 어렵고, 현장마다 감리 및 승인 절차에 막대한 시간이 소요되며, 일부 지역에서는 노동조합의 엄격한 작업 범위 제한 및 계약 조건으로 인해 현장 작업의 유연성도 떨어졌다. 영국은 엄격한 토지 이용 및 계획 승인 절차로 인해 대규모 주택이나 인프라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착공과 준공에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독일도 복잡한 에너지·환경 규제로 인해 설계 및 시공 단가가 비현실적으로 상승했고, 복잡한 인허가 및 관료주의적 승인 절차로 인해 사업기획부터 착공까지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노동, 안전, 환경 규제는 강화일로를 달리고 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법령은 국내 기업들 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건설시장에 진출하기를 꺼리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럴듯한 명분, 특히 미국이나 유럽에서 시행하고 있다는 명분으로 불필요한 규제를 신설하는 것은 늘 경계해야 한다.

셋째는 건설산업 중에서도 리스크가 높은 시공부문의 낮은 수익성이다.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건설업체들이 CM/PM, 설계 등 주로 소프트한 영역에 치중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과 유럽 건설산업에서도 시공부문은 설계나 CM/PM에 비해 기술적 차별화가 어렵고,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아 최저가 위주로 입찰 경쟁이 치열하다. 또한 전체 계약 금액의 80~90% 이상이 자재비, 장비 임대료, 현장 인건비, 외주비 등 직접비로 지출되기 때문에 순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파이 자체가 매우 작다. 개발사(Developer)나 발주처는 수수료나 지분 참여 형태로 높은 이익을 챙기면서 리스크를 시공사에 전가할 수 있지만, 시공사는 고정가격 계약(Lump-sum)에 묶여 추가 이익 창출 기회가 제한된다. 학술적으로도 이른바 스마일 커브(Smile Curve) 이론에 따라 시공 이전과 이후 단계의 부가가치가 높은 반면, 시공부문은 부가가치가 낮으니 아웃소싱하는게 낫다고 가르쳐 왔다. 이에 따라 중동과 같은 해외건설시장에서도 시공은 주로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터키 등의 국가가 담당하고 미국과 유럽 건설업체들은 CM/PM, 운영사업(Concession) 등을 수행해 왔다. 시공능력에 관한 한, 이제는 미국과 유럽 건설업체들이 한국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국내에서 필요한 반도체나 자동차 배터리 공장건설도 쉽지 않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을 놓고 볼 때, 우리 건설산업도 시공을 경시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 근본적인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시공에 필요한 건설생태계가 무너지면, 오늘날 미국에서 보듯이 우리도 외국 건설업체들에게 국내 건설시장을 내어 줄 수 있다.

넷째는 소규모 영세업체 중심의 건설산업 구조와 혁신의 모멘텀 부재다. 미국 건설시장은 파편화된 영세 시공업체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벡텔을 비롯하여 일부 극소수 글로벌 대기업도 있긴 하지만, 미국의 대형 및 중견건설사 대부분은 사실상 미국 본토 중심의 내수기업들이다. 대다수 미국 영세 건설업체들로서는 R&D, 최신 시공 장비, 디지털 기술(BIM, 현장 관리 소프트웨어 등)에 투자할 여력도 별로 없다. 영국 건설시장은 약 90% 이상이 10인 미만의 소규모 영세업체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의 대형 종합건설사는 직접 시공을 하지 않고 프로젝트 관리에 집중하며, 실제 현장 작업은 수많은 영세 하도급 업체들이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 아래에서 영세한 하도급 건설사들의 마진은 낮을 수 밖에 없고, R&D, 디지털 기술(BIM 등), 최신 공법(모듈러 건축 등) 및 고가 장비에 대한 투자를 통해 혁신할 만한 모멘텀도 대단히 부족하다. 우리도 건설업계 내부의 양극화가 진전되면 영세 중소업체 위주의 산업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고, 건설산업의 혁신을 위한 투자가 어려워지면서 혁신의 모멘텀을 상실할 수도 있다.

아무튼 미국과 유럽의 건설산업은 공통적으로 인구구조의 변화와 숙련공 부족, 강도 높은 규제, 시공부문의 낮은 수익성, 소규모 영세업체 중심의 산업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쇠퇴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양상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국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한국도 50대 후반에서 60대 숙련 건설인력의 퇴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노동과 안전 및 환경규제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건설사의 수익성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조만간 국내 건설시장도 소규모 영세업체들이 주류를 이루게 될 것이다. 결국 미국과 유럽 선진국의 건설산업 현황은 한국 건설산업의 미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들이 처한 길을 회피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의 건설산업이 쇠퇴한 원인은 자본과 기술 부족 때문이 아니다. 인력, 규제, 시장 구조 등이 더 근본적이고 큰 원인이다.

새로운 건설강국, 스페인의 경쟁력

전통적 벤치마킹 대상인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최근 유럽 국가 중 예외적으로 건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나라가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ACS 그룹 등을 필두로 글로벌 건설사가 다수 포진해 있고, 글로벌 시공 및 인프라 개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들어 스페인 건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된 원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다.

첫째는 민관협력사업(PPP/Concession) 경험과 금융·운영의 통합 역량이다. 스페인은 1960~70년대부터 정부의 예산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민자 유치 도로 및 인프라 사업(BOT/Concession)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개발·금융·시공·운영의 일체화를 통해 단순 시공이 아니라 사업 기획, 자금 조달, 지분 투자, 직접 시공, 장기 운영·유지관리까지 하나로 묶어 처리하는 종합 디벨로퍼 모델을 정착시켜 왔다.

둘째는 과감한 글로벌화 및 북미·남미 시장 선점이다. 특히 스페인어라는 언어적·문화적 유대감을 활용해 1990년대부터 중남미 민자 인프라(도로, 공항, 철도 등) 시장을 독점적으로 선점했고, 중남미에서 확보한 자본력과 PPP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등 선진국 인프라 시장의 대형 유료도로, 공항, 철도 개발권을 적극 수주하면서 사업다각화를 실현했다.

셋째는 M&A를 통한 규모의 경제 및 글로벌 네트워크 확보다. 스페인의 ACS 그룹은 독일의 거대 건설사인 호크티에프와 미국의 터너를 인수하는 등 현지 대형 건설사를 직접 인수합병(M&A)하여 수주 경쟁력과 현지 네트워크를 대폭 확대했다.

넷째는 고부가가치 투자자(Investor) 지위 확보를 통해 저마진 구조를 탈피했다는 점이다. 단순 수주 경쟁에 의존하는 시공사는 2~3% 수준의 낮은 이익률과 공기 지연 리스크에 노출되지만, 스페인 기업들은 인프라 펀드 및 사업시행자(Concessionaire) 역할을 겸해 왔다. 도로 통행료, 공항 이용료 등 수십 년간 발생하는 장기적인 수수료(Fee) 기반의 안정적 현금 흐름을 확보하여, 시공 부문의 자재비 상승이나 경기 변동 리스크를 완충했다.

끝으로, 스페인 정부의 제도적 지원 및 전방위적 자금 금융 인프라가 주효했다. 스페인 정부는 해외 PPP법인의 배당 수익 면세 및 자국 금융기관(BBVA, Santander 등)과 연계한 신용 보증 제도를 마련하여 자국 건설사들의 해외 인프라 투자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했다.

이제는 우리만의 건설산업정책이 필요하다

전통적 건설강국이었던 미국과 영국 등을 대신하여 스페인이 왜 글로벌 건설시장에서 새로운 건설강국으로 떠올랐는 지는 앞의 설명에서 명확해졌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과 영국을 대신하여 스페인 모델을 따르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라마다 고유의 건설시스템을 갖게 된 데에는 그 나름의 역사와 구조 및 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다만 오랜 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한 채 과거의 낡은 모델을 부지불식간에 추종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제는 우리도 독자적인 글로벌 건설산업정책과 모델을 갖추어야 할 때가 왔다. 산업정책적인 관점에서 미국과 유럽 선진국의 건설산업이 왜 약화되었는 지를 심층분석하고, 새롭게 부상한 스페인 모델과 비교하여 글로벌 건설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우리만의 건설정책과 제도를 준비했으면 한다.